4월 4일
아짐일찍 눈이 떠진다, 여기시간으로 2시면 눈이 떠진다. 오늘은 아침일찍 네셔날 오피스에 가야한단다, 비자연장을 신청했는데 본인이 와야한단다. 그래서 아침에 네셔날 오피스로 갔다. 왜이리 후진국들은 관공서 직원들이 권위적인지 모르겠다. 비자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깐 매우 신경질적으로 안으로 들어 오란다, 사인을 하고 나서 여권을 찾은후 여기 사무국장 앤더슨이 일하는 직장을 들렸다. 그는 여기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2번 나가는데 한달 월급이 60유로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 졌다. 여튼 학교는 사립학교인데 초등과정이 3반이 있고 중등과정 3반 고등과정 3반이 있다. 공부하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신기한 무었으로 보일 것이다. 앤더슨은 교장선생님이라며 소개를 시켜준다, 그에게 가져간 선물(명함철)을 하나 주었다. 그리고 앤더슨의 안내로 여러반을 보여 주었다. 앤더슨은 힘을 많이 얻는것 같다, 우리를 소개 시켜 주며 자기의 위상을 높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집이라고 보여준다, 우리의 촌구석에 마굿간 비슷한 곳에 침대 하나가 그의 살림의 전부이다, 그러면서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라면 부끄러워서 보여주지 못할텐데 당당하다,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구경후에 밥슨이 자기집도 가자고 한다, 그래서 그냥 항구에 가자고 했다. 마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같이 가야한단다, 포트에 형이 그쪽에 근무하여 커피 고르는법과 맛을 보여준단다. 처음 항만에 도착하여 안내를 하는데 우리의 항만 부서장 같았다. . 소개를 받고 조금 있으니까 아래 사람들에게 지시를 한다. 그러더니 우리를 2층으로 안내하여 고르는 법과 로스팅 기계를 보여주고 커피 맛을 보여 주었으니 김회장님은 관심이 없단다, 아라비카 커피가 아니라. 하여튼 구경하고 우리는 나오면서 항구를 보자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가자고 하여 숙소로 들어 왔다. 가나를 가는 것에 대하여 가나대사관에서 비자를 내면 3일이 걸린단다, 그래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국경에서 알아보라고 했더니 이곳저곳 연락 해보더니 된단다. 대신 비용이 125$가 든단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보다 낳을 것 같아서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호텔도 우리돈 5만원선에서 예약해 달라고 했다. 점심은 밥을 해서 고추장과 먹었다.
오후에 할일도 없고해서 우리는 시장이나 가자고 하여 가나 비자를위한 사진을 사진관에 맡기고 시장을 둘러 보았다. 참 여느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이들에게 치열한 삷이란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여유롭게 만드는지 6시가 지나지 않은 시각인데 벌써 하나 두개씩 문을 닫는다, 오래된 문을 조각해 놓은 조각품 2개를 샀다. 외국인에게 바가지 쒸우는게 몸에 밴것 같다, 외국인이 오면 아미 아미 를 외친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친구친구 하고 부르는 것이란다, 하나에 2만오천CFA 을 달라고 하던것을 다섯개에 2만 CFA에 하자고 하였더니 2만오천에 다섯개를 달라고 한다, 참 우끼는 놈들이다, 그래도 계속 우리가 2만 에 달라고 하니까 그것은 안되겠나보다 잡지를 안는다. 대충 이들이 부르는 가격을 안것 같다. 이제 자리를 옯겨 다른 물건을 흥정했다. 얼마나교 물어 봤더니 이번엔 1개에 7만오천 CFA를 달라고 한다. 세계에 삼만CFA에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한다, 너무 깍았나보다. 계속 흥정을 하여 결국은 두개에 삼만오천CFA를 주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무었을 해온단다. 기대하란다. 저녁을 보니 얌을 찐것과 바나나 튀긴것 그리고 게를 넣어 끓인 소스를 가져왔다. 나는 소스는 조금 그리고 얌과 바나나 튀김을 먹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사다놓은 와인을 나누어 마셨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케네디가 사과몇개와 와인 두병을 가져왔다. 그래도 약속을 잘 지킨다. 어제 가져 온다고 약속하더니 오늘 가져 왔다. 그래서 와인을 한두어잔 더 마시고 있는데 어제 방문 해던 호룰누우가 자기 선수 시절을 기록해 논 앨범과 사과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보고 보란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 앤더슨이 물어본다, 남북관계에 대하여 자기는 이해를 하지 못한단다. 왜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하는지,,, 그럴만도 하다, 여기사람들은 남과북이 분리 되어 서로 싸우는 지를 모른다, 다만 독일처럼 서로 왕래하고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우리 언어에 대하여 설명 하여 주었다. 금 방 배울것 갔단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칭찬한다.